아침기온 16도. 맑음, 머리가 지끈지끈.
어제는 잠을 설쳤다.
갑작스러운 일 때문에 취침도 늦어졌다.
수영을 하고 나서 온몸이 쑤셔대더니
결국 새벽에 깨고는 한 시간을 보냈다.
평일엔 몸이 아픈 게 아니라면
가급적 산책을 하겠다고 나만의 룰을 정했기 때문에
망설이지 않고 산책을 나왔다.
생전 처음 배우는 수영이다.
생전 안 쓰던 움직임을 해서인지 온몸 구석구석이 난리다.
그래도 지금 내가 느끼는 근육통이
물에서 뜨게 만들어주고, 앞으로 나아가게 만들어 줄 것이라는 걸 알기에
오히려 즐거운 비명소리로 들린다.
나는 이 근육통과 함께 몸과 마음이 물에 뜨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중인 것이다.
그러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삶은 고통의 연속이다.
우리가 성장하기 위해서 고통이 따른다.
때로는 시련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어떤 성취도 없어 보이고 매몰차기만 하기 때문이다.
당장은 말이다.
그러니 당장의 고통을 시련이라고 여길지 모르겠다.
이 작은 성과들이 쌓이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결국 좋은 방향으로 나아간다.
당장엔 고통스럽기만 할 뿐 어떤 성과도 없어 보인다.
하지만 성과가 없는 것이 아니다.
다만 너무 작아 알아차리지 못할 뿐이다.
결국 우리가 말하는 고통은
알고 보면 아주 값진 보상인 것이다.
다만 너무 작아 인지하지 못할 뿐이다.
그것이 하루 이틀 쌓여 눈에 보이는 크기가 되어야 알게 된다.
그동안의 고통스러웠던 시간이 헛된 것이 아님을.
우리 삶에 좋은 것들은 대부분이 그렇다.
오랜 시간 공을 들여야 얻을 수 있다.
오랜 시간이 걸려야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얻기 어렵다는 말이다.
어렵기 때문에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고통스럽지 않은 선택을 한다고 해서 마냥 좋은 것도 아니다.
고통을 피해 당장 얻을 수 있는 행복은 독약이다.
위와는 반대로,
당장의 성과 안에는 알아차릴 수 없는 작은 고통이 녹아있다.
이것들이 쌓여 결국 큰 고통이 한 번에 밀려올 것이다.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고,
결국 우리 삶을 망가뜨릴 것이다.
그리고 딱히 당장 고통을 피한다고 해서 행복한 것도 아니다.
마음 한편 어딘가는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물론 위에서 말한 고통과는 다른 의미로 말이다.
결국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든 고통이 따른다.
그것을 인지하고 어떻게 받아들이는지가 다를 뿐이다.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고통은
어쩌면 제대로 가고있다는 신호일 것이다.
나는 이런 것들을 깨닫고
내게 고통은 전혀 다른 의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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